목회란 늘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목회자로서 가쁜 숨을 몰아치며 목회를 강행군하다 보면 탈진이라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탈진한 목회자는 목회를 생산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또 목회를 하면서 짜증과 마음에 번민이 찾아온다. 그렇지만 수많은 목회자들이 목회를 강행군하며 고통을 당하게 된다. 목회자도 인간이므로 종종 안식의 은총이 필요하다. 목회에 있어 안식은 나 개인적으로는 목회의 현장을 잠시 떠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의 그 치열한 상황을 벗어나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혹은 여행을 통해, 혹은 다른 배움의 시간을 통해 자기를 새롭게 하는 일이 바로 안식이다.
지난 16년의 사역을 통해 지치고 시달린 몸과 영을 잠시 충천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민의 삶에 쉼도 없이 살아가는 교인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목회자에게 피로 증후군이 몰려 오면 교인들에게 영적 유익이 되지 못한다. 많은 사역과 계속되는 목회 사역을 통해 조금은 쉼이 필요한 시간이다, 또 잠시 숨을 돌리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이 사역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성찰해 보고 싶다. 일과 생산, 그리고 성취를 잠시 중단하고 그침과 쉼, 그리고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내적 욕구가 일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서구 문화와 현대 문화는 일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문화이다. 우리는 쉴새없이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안심이 되는 근로 문화에 익숙해 있다. 많은 이민자들이 쉬고 있으면 웬지 불안해진다고 한다. 나를 비롯한 적지않은 목회자들이 일중독에 빠져 있다. 무언가 하지 않고서는 나의 목회가 위험해 질 것 같은 쓸데없는 긴장에 눌려 있을 때가 너무 많다. 안식이란 이러한 일중독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하게 한다. 우리가 매주 맞는 주일은 그 날 하루만큼은 일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그로 인해 엄청난 자유가 우리에게 몰려 오는 것을 체험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목회의 현장에서 벗어나 자연의 미에 빠져 보기도 한다. 이곳 저곳 다른 교회를 다니며 자유로운 예배자로 예배도 드려본다. 서점에 가서 책을 싸 놓고 이 책 저 책도 섭렵해 본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걸으면서 이곳 저곳을 기웃기웃 거리기도 한다. 목회적 일상에서의 이탈이 모처럼의 새로움으로 나를 인도하여 준다.
나에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외삼촌 한 분이 계신다. 그 분은 오래 전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수십 년간 야채 가게를 운영하셨다. 아침 이른 새벽 뉴욕 헌츠 포인트 시장에서 과일과 야채를 떼어다가 물을 뿌려 신선하게 하고 다듬는 일을 하셨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으셨다. 단 한번 가게를 닫은 적이 있었다. 엄청난 폭설로 인해 전 뉴욕이 올스톱이 되던 그 하루 만이였다. 가게를 닫은 그날 하루 종일 불안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그렇게 살던 분이 홀연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너무나 허무했다. 조금 더 안식하는 지혜를 배우셨다면 누리고 감사하는 인생이 되셨을 것이다.
안식의 삶은 우리로 우리 자신들이 기계가 아닌 하나님의 창조의 안식 질서가 필요한 피조물임을 알려 준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내면에 꼭 필요한 것, 우리가 정말 붙들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 오 주님, 우리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우리의 영혼엔 진정한 안식이 없나이다” 라는 어거스틴의 고백이 옳다. 생산과 성취를 그치고 쉼을 가지라.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욱 더 윤택하게 해 주고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안식을 마치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창조적 목회로 복귀 하고 싶다. 거친 이민 목회에서 시달리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위로를 드린다. 꼭 잠시나마 목회의 안식을 권하고 싶다.